응급실

2011. 4. 24. 23:58 from white

 




줄줄이 아픈 얘기다.

지난 주 유재가 딱 한 살 되던 생일날 저녁, 
요 전과는 또 다른 모양의 발진이 또한번 유재의 몸을 뒤덮었다.
잘 자다가... 은후와 내가 실로폰 치는 소리에 깨 보채서 보니 귀가 빨갛게 퉁퉁 부어 있고, 콧등 부위에 모기 물린 듯한 발진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간지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유재... 결국엔 귀를 잡아 뜯어 피가 나고... 얼굴에 조금 보이던 발진은 가슴으로, 배로, 다리로... 점점 퍼져가기 시작했다. 모기물린 듯한 크기도 처음엔 작더니 점점더 그 면적이 커져갔다.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이렇게 울며 보챈 적이 처음이라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살살 몸을 긁어주니 조금 진정되어 다시 잠이 들었다. 응급실에 가봐야하나 하다가 다행히 며칠 전 처방받은 항알러지 약 남은게 생각나서 다시 깼을 때 먹이고 재우니 발진은 거의 가라앉았다. 
음식물 알러지 같았다.
낮에 버터와 우유가 들어간 빵을 아주 조금 먹였는데 그것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유재는 유제품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음식 알러지 테스트를 받아봐야지 안되겠다.

암튼 그렇게 또 한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하루 걸러... 이번엔 또 갑작스레 은후가 다쳐 응급실에 다녀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
등에는 유재를 업고, 응가를 참고 안하겠다는 은후를 겨우겨우 끌고 화장실로 가서는 번쩍 안아 변기에 앉혔는데... 이상했다. 엄마의 직감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은후를 보는데 느낌이 안좋았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었다.
팔이었다. 팔이 아프단다.
화장실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은후 손을 잡고 내가 억지로 끌고 가다가 그만
은후의 팔이 빠졌다.
변기를 짚고 내려오지도 못하는 은후를 겨우겨우 안아 이부자리로 옮겨 눕혔다.
팔을 조금만 만져보려고 해도 "엄마 안돼~ 엄마 안돼~"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통스러워 했다.
그렇게 흐느껴울다가 스르르 스르르 자꾸 잠 속으로 빠져드는 은후...
이대로 자면 안되는데...
잠든 은후를 보고 있으니 내가 지금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싶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119에 전화하니 10분만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구급대원 아저씨가 은후의 다친 팔을 만져보며 상태를 파악하더니,
아무래도 오른쪽 어깨가 많이 부어있는 것 같다며 어깨 탈골이 의심된다고 했다.
환자이송침대를 밀고 왔지만 태우지 않고 아저씨가 직접 안고 은후를 구급차로 옮겼다.
추울까봐 양말은 미리 신겨두었고, 추울까봐 담요 하나 또 챙겨들고
유재를 안고 구급차로 향했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빛을 번쩍이며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웅성웅성 서있고...
급히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장난감 구급차만 봐오던 은후는 직접 구급차를 타보는 게 아픈 중에도 신기한 듯 보였다. 울음을 그치고 두리번거리며 아저씨 품에서 진정이 되었다.
어느 병원으로 갈 지... 내가 잘 몰랐다.
나보다는 구급대원 아저씨들이 더 잘 알테니 아저씨가 추천하는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우는 어린 아이에게
간호사는 울면 주사 놓을거라는 말로 뚝 그치게 만든다. 안그래도 아프고 불안한 아이를...ㅠ.ㅠ
의사선생님이 팔을 만져보더니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제자리를 찾아 맞추는건지...
팔이 제자리를 찾은건지... 시원스럽지가 않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촬영실로 들어가란다. 나도 같이 들어갔다가 아기를 안고 있어 다시 밖으로 나와 기다렸다. 방사능 비 한방울이라도 덜 맞추고 싶던 마음... 내 부주의로 인한 쓸데없는 엑스레이 촬영 한 방으로... 몇배는 더 되는 방사선에 아이를 그대로 노출시키는구나. 또한번 죄책감이 밀려든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이제 괜찮단다.
하지만 은후는 여전히 팔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아파서 눈물을 흘린다.
아이가 다친 충격 때문에 움직이려 하지 않는 것일테니 좀 진정을 시키고 집에 가면
괜찮아질거라고...
의사는 더이상 해줄 것이 없는 것 같다. 좀더 세심하게 아이를 진찰해주면 좋았으련만...
그사이 아빠도 도착했고... 은후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은후는 오른쪽 팔꿈치 쪽이 아프다 하고 팔을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무렵.
은후는 바로 잠이 들었고, 밤 12시 무렵 거의 비명을 지르듯 자다깨서 한번 엉엉 울었다.
다친 충격인지 자다가 팔이 눌려 아팠는지 그렇게 갑자기 몇 분간 울다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은후의 상태가 나아지질 않아 소아정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정형외과를 검색해 찾아갔다. 여전히 팔이 아픈 은후는 치카치카도 못하고 전 날 입었던 내복도 갈아입질 못한 상태.
꼼짝않고 몸통에 딱 붙인 오른팔, 손에는 뜨뜻한 땀이 배어 있다.

금요일 오전임에도 정형외과 병원엔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점심시간 끼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은후 차례가 왔다.
사탕통을 내밀어도 여전히 꼼짝않는 은후의 오른팔...
팔꿈치뼈가 아직 제자리에 맞춰지지 않아서일거라고, 3~4mm 정도만 안맞아도 아픈데 그건 엑스레이상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거란다. 의사선생님이 은후 팔을 만져보며 살살 접었다 폈다...

딸깍~

우리는 듣지 못했지만 은후와 의사선생님만이 들었다.
몇시간동안 삐끗해있던 뼈가 제자리를 찾아 이제 확실하게 돌아간 소리가 났다.
진료실을 나가면서부터 은후의 오른팔이 몇시간만에 다시 굽혀지는 모습을 보고서야
엄마 마음도 뻥~ 뚫렸다.
다시 팔팔하게 기운을 되찾은 은후.
엄마랑 가위바위보도 해보고 팔로 V자도 만들어 보고...




정말 놀랐다.
난생 처음 119에 도움을 요청해봤고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소리..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병원으로 실려가보았다.
졸지에 무지막지하게 아이 팔을 잡아당겨 빠지게 만든 터프한 엄마가 되었고
아파 우는 아이 옆에서 미안해 발만 동동 구르던 그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도 미안함에 안타까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렇게 팔이 한 번 빠지면 또 빠지기 쉽다고 한다. 8세 전까진. 그러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그땐 괜찮아진단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30번까지 빠지는 아이도 있단다. ㅠ.ㅠ

다행히 은후는 아직까진 몸도 맘도 후유증이 없어 보인다.
다쳐서 응급실 간 날, 아빠가 은후 씩씩하게 치료 잘 받았다고 뭐 갖고싶은거 없냐고 물었을 때 은후는 지하철이 갖고 싶다고 했다.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마트에서 찍어놓은 지하철이 있다. 마트 갈 때마다 지하철 얘기를 하곤 했는데... 때가 왔구나...
병원에서 차례 기다리는동안 근처 롯데마트에 가서 지하철을 찾아보니 없다. 이마트에서 봤나? ^^ 은후는 대신 공항버스를 골랐다. 집에도 비슷한게 있건만... 유치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부터 부쩍 버스 종류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가끔씩 구급차를 타 본 얘기도 하고... 버스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 진찰받았던 얘기도 하고... 의사선생님이 팔을 이렇게 접어서 뚝 소리가 나서 팔이 다 나았다는 얘기도 하고... 엄마가 똥누라고 팔을 당겨서 팔을 다쳤다는 얘기도 한다. ㅠ.ㅠ

근데 한편으론 억울하고 속상한게... 정말 별로 세게 잡아당기지도 않았는데...
그냥 늘 실랑이 하는 정도... 그 정도였는데...ㅡ.ㅡ;;
우리 은후 아직 많이 약하고 여리구나.
엄마가 더 많이 조심할께.
앞으론 조심하라고 한마디 할 만도 한데... 남편은 오히려 많이 놀랐을 나를 걱정해준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우리 아이들... 더 조심히, 소중히 대해주자고... 처음 품에 안고 그랬던 것 처럼...


아이는 힘으로 다스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더 많이 조심하고... 마음으로 대해야 함을...

엄마는 또한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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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