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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4 중독 4

중독

2010. 1. 14. 14:40 from yellow






내가 중1 때,  페르시아 왕자라는 도스게임이 있었다.
60분이란 시간 안에 성에 갇힌 공주를 구해내는 게임이었다.
난 밥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 중1 여름방학 한 달을
공주를 구해내는데 꼬박, 모조리 바쳤다.
미로같은 성 안을 찾아헤매며 총 12단계를 깨야했는데 젤 마지막 단계에서 계속 헤매다
결국은 언니방에서 우연히 보게된 PC잡지에서 해답을 얻어
마지막 12단계를 깨고 공주를 구해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갔을 땐 칠판글씨가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고
어릴때부터 안경이 쓰고싶어 그토록 노력해도 꿋꿋하기만 했던 나의 시력은
그 뒤로부터 뚝뚝 떨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굉장한 마이너스 시력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는 나의 시력과 바꿔 공주를 구했던 것이다. 이런 바보같은......ㅡㅡ;

당시 녹색화면의 16비트 컴퓨터 앞에서 하루종일을 보냈으니 그럴만도 했다.
나의 시력과 바꾼 껨이라 잊을래야 잊을수도 없거니와
지금 생각해도 왕자의 동작은 참 유연하고 섬세했고,
적을 찌를 때와 가시밭에 떨어질 때.. 등등 갖가지 음향효과도 참 리얼하고 섬뜩했다.
화면만 거칠다 뿐이었지 참 세심하게 만들어진 껨였다.
보물찾기하듯 여기저기 숨은 힌트들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었고
8단계였나? 난관에 처해 이도저도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새앙쥐 한마리가 기어나와 도움을 주고 가던.. 나름 깜찍한 요소들도 기억에 남는다.





내 시력을 앗아간 공주.
왕자와 뜨거운 포옹을 하며 게임은 끝난다.
갖은 난관을 헤치고 고생 끝에 만난 공주와의 엔딩 장면은 허무하리만큼 별 게 없었다...
왕자가 꼽추같아보이리만큼 등을 굽혀 공주를 꼭 껴안아주던 모습.. 그게 다 였다.

어릴때부터 껨을 몹시도 좋아했던 나는 암튼 이렇게 한번 무섭게 데고 난(?) 후부턴
게임을 멀리했다.
90년대후반 스타크래프트로 전국이 들썩일 때도...
난 또 심하게 중독될까봐
또 나의 중요한 뭔가를 잃게될까봐;;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구경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류의 껨이기도 했고.



은후는 내가 컴퓨터앞에 앉아있는걸 몹시도 싫어한다.
쪼르르 옆에 와서는 내 손을 잡아끌며  "띠-디-디-  딩~" 윈도우 종료음 소리를 반복하며 빨리 끄라고 한다.
좀더 어릴 땐 그냥 스위치를 꺼버리거나 코드를 뽑아버린 적도 많다.
며칠 전 내가 컴 앞에 꽤 오래 앉아있었는데도 이녀석이 뭘하는지 조용하길래... 또 사고를 치나 싶어 가보니 엄마아빠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곤 발만 내놓고 있는 것이다.
설마 또 낮잠을? 혹시라도 깰까싶어 조용조용 다가가보니 이불 속 깊숙이서 들려오는
"띠리링 띠링띠링 띠리리링~~♪"
닌텐도 마리오카트 노래소리. ㅡ.ㅡ
이불을 들춰보니 눈앞에 바짝 화면을 대고는 게임에 심취해있다.
이불 뒤집어쓰고 깜깜한 어둠속에서...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게냐... ㅠ.ㅠ
자기 나름대로 엄마의 간섭을 피할 포근하고 안락한
안전한 장소를 찾고싶었던걸까?
이런 상황이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핸드폰, 리모콘, 각종 버튼달린 기계들...
게임기는 오죽하랴.
아기들이 좋아할 수밖에.

중독이란 무서운거다.
어릴때부터 습관이 중요하다.
자제력도 훈련이라 생각한다.
내 시간을 찾겠다고 아이를 무심히 방치하지 않겠다.









다시 페르시아 왕자로. ^-^
이젠 3D게임으로 여러가지 시리즈가 나와있고
비주얼도 정말 비교도 안되게 화려해졌다.
시간의 모래 - 전사의 길 - 두개의 왕좌...
또다시 발동이 걸려온다.
하지만 하루 24시간도 모자란 애기엄마가 껨은 무슨...
나중에 내 취미생활을 맘껏 즐길 수 있을 때쯤...

그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땐 무모하게 빠져들지 않고 적당히 할거다.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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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