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라는 것

2009. 11. 4. 13:04 from white


어린시절, 엄마의 장농 제일 위 선반에는
이것저것 여자아이가 가지고놀고 싶은 물건들이 많았다.
엄마가 아주 가끔씩 드는 작고 예쁜 핸드백부터
한쪽켠엔 언니와 나의 아기시절이 담긴 육아일기 수첩들.
사실 언니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다이어리 속 얇은 종이에 곱게 쌓여있던 언니의 배냇머리는
실제 아기를 다루듯 조심스레 열어보고 만져보고 다시 쌓아두고를 얼마나 많이
반복했었는지 모른다.
어린아이의 손에도 보드라운 솜털만같아 자꾸자꾸 만져보고싶던 그 좋은 느낌.
그걸 만져볼 때마다 난 엄마한테 물었었다.
왜 언니머리만 있고 내껀 없냐고.


나도 은후가 태어나고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육아일기를 쓰고 있다.
밀린 일주일치를 기억을 더듬어가며 한꺼번에 쓰거나 할 때도 많지만
처음 뒤집고, 기고, 서고, 걷고, 그런 큼직한 사건들은 물론이고
그날그날 먹은 반찬이며 간식이며 다치고 사고친 일들, 나날이 늘어가는 재롱들...
지나고나면 잊어버려 결코 기억나지 않을 사소한 사건들까지
꼭꼭 제 날짜에 맞추어 기록을 해둔다.
몇십년 후면 잊혀져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흘러가는 아기의 모습들 하나하나가 모두 너무 아까워서다.
배냇머리는 물론, 탯줄, 아기시절 손톱까지. 모두 고이 잘 보관해두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첫돌까지 1년.
일기라고 할 것도 없이 간략하고 짧은 메모들이 모인 한 장의 커다란 종이.
이 안에 은후의 1년이 있다. ^^







첫돌 이후부터 지금까지... 
말썽이 늘면서 글씨들이 점점 깨알만해지는구나.







군데군데 은후의 흔적들. 엄마몰래 엄마흉내내기.




뱃속에 둘째가 생기고
이제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될 날이 점점 가까와올수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둘째에게도 은후때만큼의 정성과 시간을 쏟아
하루하루를 기록하고... 자라는 흔적을 남기고... 보관하고...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꼭 똑같이 해주는 것만이 결코 둘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니의 배냇머리만이 남아있지만 엄마는 우리 둘을 늘 똑같이 사랑하고 예뻐해줬듯이.

왠지 정신없이 바빠질 몇 달 후를 생각할 때마다
벌써부터 둘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건... 너무 섣부른 걱정일까?
어쩌면 은후한테 더 미안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동생이 어디있냐고 물으면 자기 배를 두드리는
아직 동생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 아이에게
많은 부분 양보라는걸 가르쳐야 하고,
엄마는 하나이기에
시간도 두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이제는 시간도 나누어야 하고 사랑도 나누어야 한다.
 
두 아이 모두 서운하고 슬프지 않도록
마음과 손길을 적절히 잘 배분할 줄 아는 엄마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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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