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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반 이은후

2011. 3. 17. 10:40 from white





원래 예정일은 다음 해 1월 11일이었는데...
2007년의 마지막을 붙잡고 은후는 17일이나 빨리 세상에 나와 황금돼지해 친구들과 같은 배를 타게 되었다.
황금돼지해엔 그 전 해에 비해 5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더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
제작년 어느 날인가 뉴스에서 황금돼지해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입학할 무렵 치열한 경쟁으로 대란을 겪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 말. 또 한 번 황금돼지 아이들의 유치원 입학 대란이 지나갔다는데...
현실감 없는 이 엄마는 입학원서도 느긋하게 한 발 늦게 접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후는 원하는 유치원에 무사히 입학하여 다섯살 분홍반, 새내기 유치원생이 되었다.
몬테소리 교육을 굳게 신뢰하기에, 몬테소리 교육이념을 따르는 유치원을 망설임없이 믿고 선택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유치원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타고 다녀야 해서 생각보다 이른 아침부터 은후는 버스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선다.


은후는 단체생활이 처음이다.
기관에 일찍 다니든 그렇지 않든 각각의 장단점이 있겠지만
적어도 세 돌까지는 집에서 같이 지낸다는 나의 확고한 결심으로 인해 은후는 또래들에 비해 단체생활을 좀 늦게 시작한 편이다.
나도 물론 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밖에서도 똘똘하게 스스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엄마이긴 하지만, 사회성보다도 먼저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튼튼하게 잘 형성되어 있어야 안정된 독립도 가능하다는 의견에 나는 전적으로 마음 깊이 동의한다.
둘째 낳고 둘 키우느라 정 힘들면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라도 보내야지 생각한 적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동생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할 시기에 동생으로 인해 바로 집에서 내몰린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그러지는 말자 생각했다.
39개월, 이제는 충분하다 느낀다.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호기심도 하늘을 찌르고, 우리 사이가 더 징한 사이가 되기 전에 은후의 사회 진출(?)이 절실한 타이밍이기도 하다. ^^


 




2월에 있었던 유치원 2차 OT는 엄마와 아이가 같이 참석하는 시간이었다.
어느정도 시간이 좀 흐르고, 엄마 옆에 앉아 있던 아이들을 선생님이 모두 앞자리로 불러 모았는데 은후는 끝까지 엄마 옆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긴 하나 적응기간이 좀 걸리겠군
처음으로 실감했다.

3월 2일부터 등원은 시작되었고, 은후네 유치원은 특별히 입학식을 따로 치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첫 주 3일동안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등원을 했다.
첫날은 아이와 선생님의 1:1 수업으로 유치원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몇가지 사항들을 연습하는 수업이 20분간 진행되었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 옆에서 지켜보며 아이가 불안하지 않게만 해주었고 가끔씩 엄마의 도움이 필요할 때만 잠깐씩 관여했다.

둘째날은 5명의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등원해 서로 이름을 말하고 인사를 하고 교구를 다뤄보고 친구관계를 배워가는 시간이 40분간 진행되었다. 2명의 여자친구와 3명의 남자친구들이 모였는데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차이를 나는 이 자리에서 아주 확실하게 보고 왔다. 뭐 각각의 아이들 성격차도 있겠지만... 여자아이들은 참으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어른스러운데 비해 남자아이들은 시키면 일단 반항. 왜이렇게들 빼고 안하는지... 안한다고 드러눕는 녀석도 있고.ㅋㅋ 손녀를 데리고 오신 옆자리 할머니께선 "요즘은 남자애들이 더 수줍음을 타~" 하셨다. ^^

마지막 날은 10명의 친구들이 엄마와 함께 등원했다가 엄마들은 강당에 모여 수업을 하고, 아이들은 선생님과 모여 60분간의 수업을 하는,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은후는 은후공부시간, 엄마는 엄마공부시간 하다가 끝나고 다시 만나는거라고... 미리 누누히 얘기는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종이 울리고 모이라는 선생님의 신호가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엄마 한번, 선생님 한번 번갈아 보고 있는 은후를 두고 나는 슬그머니 교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렇게 슬그머니 사라지는게 아니라 엄마는 엄마공부하러 간다고 확실히 인사를 하고 왔어야 했을까? 그럼 또 엄마랑 떨어지지 않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게 될 것 같아
어짜피 한번은 겪을 일... 선생님 앞으로 가라고 시선을 돌려주곤 소리없이 매몰차게 나와버렸다.
처음이라 낯설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이에게도 군중심리라는게 있을텐데... 친구들이 모두 모이면 저도 가겠지...하며 강당으로 내려갔다.

그 시간동안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줄 방울 도마뱀을 열심히 만들었다. 한시간동안 엄마와 떨어져 씩씩하게 수업을 마친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건네줄
중요한 임무를 띤 도마뱀이었다. ㅋㅋ
이런 저런 궁금한 점들에 대해 질문도 하고... 엄마들의 한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훌쩍 지나갔다.
과연 은후는 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도마뱀을 통통거리며 교실로 향했는데... 교실 밖에 먼저 나와 서 계시던 선생님 한 분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씀을 건네셨다.

"은후가 간식시간에 간식을 안먹어서... 집에 가서 먹으라고 도시락 통에 요구르트 넣어줬어요..." 

"아... 그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은후의 모습을 찾으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선생님 앞에 옹기종이 모여 앉아 있는 아이들 뒷편으로... 교구장이 놓여있고... 또 그 너머로... 코트를 입고 가방을 메고 집에 갈 무장을 마친 은후가 멀찌감치 혼자 서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설마...) 저기 저렇게 계속 혼자 서 있었던건가요?"
"네... 듣기는 다 듣는데... 저기 있고 싶다고 해서 억지로 밀 수가 없었어요..."

한 시간 내내 그렇게 혼자 뚝 떨어져 서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멀리서 관찰만 한 우리 은후...


 




마음이 아팠다.
아니 속이 상했다.
분명 예상은 한 일이었으나 씩씩하게 친구들 무리에 섞여주길 바랐던 엄마의 욕심또한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은후 주려고 이렇게 열심히 도마뱀도 만들었건만...
은후는 왜 친구들 자리에 안가고 혼자 서있었어? 선생님 가까이 있어야 선생님 말씀도 더 잘 들리고 선생님 예쁜 얼굴도 더 잘 보이잖아... 은후는 왜...? 왜...? 왜 그랬어?
분명 은후 마음이 어땠는지 엄마는 잘 알고 있었지만 왜 마음과는 달리 왜라는 질문만 퍼부었을까.
난...

그날 저녁. 마침 은후의 유치원 적응이 궁금하셨던 친정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 부리지 않던  투정까지 부리는 딸의 마음을 단번에 알아채신 엄마는 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신다...
처음엔 다 그런거라고... 엄마도 아빠도 처음엔 다 그랬었다고 은후한테도 잘 설명해 주라고...
사회성도 엄마가 키워주는거지만 아이의 타고난 기질도 이해해주어야 하는거라고...
은후가 사회성이 아직 좀 약하고 밖에서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지만
차차 괜찮아질거라고... 잘 적응할 거라고...
근데 사실 정말 멋있는 파워는 조용한 남자로부터 나오지 않냐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때메 웃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긍정의 힘을 주신다.
속상한 마음이 풀리면서 은후 편에 서서 마음을 헤아려주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장 바쁜 첫 2주동안 남편은 내내 러시아 출장 중이었고
둘째를 맡겨놓고 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렇게 3일 연속 엄마가 함께 참석하는 수업이 많이 번거롭고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스무명의 많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업에 서서히 적응할 수 있도록 아이들 입장을 생각해준 유치원측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입학식도 한달 쯤 후 아이들이 어느정도 유치원 생활에 적응을 하고 난 뒤 치뤄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입학식 자체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식보단 실제가 중요하니까... 나도 그런 방침에 공감한다.


다행히 은후의 적응은 빨랐다.
아침에 버스 타기 전 엄마와 떨어지며 이틀 엉엉 울고,
첫째날은 또 멀찌감치 혼자서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모습을 내내 관찰만 했지만
둘째날은 드디어 친구들과 함께 앉아 수업에 잘 참여했다는 기쁜 소식을 담임선생님을 통해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은후가 좋아하는 국기관련 수업의 힘이 컸던 듯 싶다.^^
셋째날까진 간식시간만 끝나면 집에 갈 채비를 하고 문가에 서서 기다렸는데
넷째날부턴 정상적으로 모든 활동에 잘 참여하고, 아침에 버스를 탈 때도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가기 시작했다.
혼자 가기 시작한 2주째인 요번 한 주동안도 내내 밝은 표정으로 오고가고... 선생님께 90도 배꼽인사도 잘 하고. 그렇게 한가지씩 한가지씩 마음을 열며 은후의 굵고 짧은 적응기는 확실히 끝이 난 것 같다.
나름대로의 관찰기를 거쳐 이제는 유치원이란 곳이 자기가 발을 담궈도 될만한 곳, 안전하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터득한 것 같다.
하루에 두 번씩 버스를 타는 것도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집에 와서도 문득문득 그날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배웠던 것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친구들 이름도 하나둘씩 얘기하기 시작하고. 잠꼬대로 유치원 원가를 부르기도 한다.
아직 스스로 옷을 입고 벗고 하는 일이 서툰 은후를, 여자친구들이 조금씩 도와주는 모양인데 은후는 그들을 누나 라고 표현한다. ^^

은후가 마음의 안정을 찾고 밝은 마음으로 웃으며 유치원에 다닐 수 있게 돼 참 기쁘고 감사하다. 대견하고...
요번주까진 단축수업으로 오전수업이었는데 다음주 부터는 점심도 먹고 2시간 늦게 수업이 끝난다.
은후가 없는 조용한 집... 유재는 그동안 밀린 잠을 몰아 자듯 길고 긴 낮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아 행복해...ㅠ.ㅠ

이렇게 차츰차츰 엄마로부터 독립해가는구나... 이녀석... 크고 있는게 맞구나...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겐 새롭고 설레는 봄이다...^^









곰의 모성애는 인간보다 더 깊고 따뜻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린것이 두 살쯤 되면 어미 곰은 새끼를 데리고
산딸기가 있는 먼 숲으로 간다고 합니다.
평소에 눈여겨보았던 산딸기밭이지요.
어린 새끼는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잠시 어미 곰을 잊게 되지요.
그 틈을 타서 어미 곰은 몰래, 아주 몰래 새끼 곁을 떠난다는 겁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침을 발라 기르던 새끼를
왜 혼자 버려두고 떠나는 걸까요.
왜 그렇게 매정스럽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걸까요.

그 이치는 간단합니다.
그건 새끼가 혼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언제까지나 어미 품만 의지하다가는 험한 숲 속에서 생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발톱이 자라고 이빨이 자라 이제 혼자서 살아갈 힘이 생겼다 싶으면
어미 곰은 새끼가 혼자 살아가도록 먼 숲에 버리고 오는 것이지요.

새끼 곰을 껴안는 것이 어미 곰의 사랑이듯이
새끼 곰을 버리는 것 또한 어미 곰의 사랑인 거지요.
그래요,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산딸기밭을 눈여겨봐 두어야 해요.
아이들이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 몰래 떠나는 슬픈 연습도 해둬야 합니다.
눈물이 나도 뒤돌아보지 않는 차가운 사랑을 말이지요.

그게 언제냐고요.
벌써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잡았던 두 손을
놓아주었던 때가 있었잖아요.
그때부터 시작된 일이지요.
매일매일 무릎을 깨뜨리는 아픔이 있더라도
어머니와 따로 살아갈 수 있는 그 걸음마를 위해 손을 놓아주세요.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그 연습은 시작된 것이랍니다.
어머니에게는 또 하나의 사랑, 얼음장 같은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 이어령 선생님의 <어머니와 아이가 만드는 세상> 中 어미 곰처럼 -






두 녀석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잡아당기다 모가지가 끊어진 방울 도마뱀.
하루를 못가는구나 하루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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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