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땜

2012. 1. 27. 23:25 from white







며칠 전 일 같은데 벌써 한달이나 지났다.
기억을 떠올리기가 괴롭다.


은후 겨울방학 시작 이틀째 되던 날, 새해 이틀 앞둔 날
또한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2011년 한 해 우리가족 나부터 시작해 참 많이 아프고 응급실, 병원
많이도 들락날락 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ㅠ.ㅠ




이렇게 폭탄맞은 모습으로 새해를 맞이할 순 없다고
모처럼 대청소를 해보겠다고...
거실 한구석부터 치워나가기 시작했다.
새해 이틀 전 날,
새해 맞기 전까지만 다 치우자 맘먹고.

옆에서 큰녀석은 페인트칠을 한다며 방방 하얀 벽벽마다 빗자루로 문지르고 다니고
작은 녀석은 어느샌가 쓰레받기를 밟아 두동강이를 내놨다.
방해세력들이 옆에서 아무리 활개를 친들
오늘만큼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꿋꿋이 치우고 또 치웠다.

드디어 거실이 오랫동안 감춰왔던 나무 바닥을 드러내며 말끔히 정리되고
마지막으로 청소기랑 스팀 한 번 뽀드득하게 돌려주는 일만 남은 타이밍였다.
모처럼만에 뻥 뚫린 거실에서 은후의 질주본능이 작렬하는 그 순간에
하필 나의 발은 왜 그 곳을 떠나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던걸까...


우당탕 하는 소리 뒤로 흐르는 3초간의 정적.


보통 그 3초동안 나는 어디에 있든지 동작을 멈추고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둘 중 어떤
소리가 터져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기다리게 된다.

하지만 그 날은
우당탕 소리와 동시에 엄마의 직감으로 알았다.

이건 왠지...
은후야... 안 돼... 안 돼......

입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고 앞니들은 거의 피에 잠겨 보이질 않았다.
어디서 피가 나는건지...
놀라 아파 엉엉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며 화장실로 데려가
입 안을 헹구고 상처부위를 찾아보려 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엉엉 우는 은후의 입에서는 피가 마치... 응고되어 흐르듯... 덩어리처럼 무섭게 흘렀다.
깨끗한 가제수건을 찾아 입에 물리고 지혈을 시켰다.
그 때 시간이 저녁 7시 정도.
놀란 은후는 수건을 꼭 물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다
스르르 스르르 잠이 들었다.

피는 많이 흘렸어도... 입 안이라... 금방 아물거라 생각했다.
응급실에 가도... 당장은 입 한 번 소독해주고 말 것 같았다.
토닥토닥... 그냥 편히 재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은후 입 속을 남편이 먼저 들여다보았다.

잇몸엔 검붉은 피멍이 넓게 들어있고
오른쪽 앞니는 흔들리고
왼쪽 앞니는 약간 비뚤어진 채 잇몸 속으로 2mm정도 박혀들어가 있고......@.@

아마도 바닥에 있던 빗자루를 밟고 미끄러졌던가
청소기 코드에 걸려 넘어졌던가
넘어지며 앞니를 바닥에 바로 부딪힌 것 같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ㅠ.ㅠ
손에 들고 뛰던 부직포걸레의 알루미늄 대도 넘어지면서 휘청~ 휘어져 있었다.


어린이치과를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고 진단을 받아본 결과
두 가지 선택안이 나왔다.
그냥 더이상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내던가,
잇몸에 박힌 이를 제자리로 빼고 옆의 이들과 연결해 보정물을 달고 지내던가.

그나마 다행인 건 뿌리까지 손상되진 않았고 은후는 구강구조상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 딱 맞닿지 않는 구조라 입을 다물거나 음식을 먹을 때 다친 이에 충격이 바로 전해지지 않아서, 더이상 다른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지낸다면 특별히 따로 치료하지 않아도 될거라고... 들어간 앞니도 다시 저절로 제자리로 내려오는 경우도 있고.
조심히 지내다 한 달 뒤에 다시 경과를 보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조심 지낸지 채 일주일도 못되어
자고 있는데 유재가 머리로 박아 피 한 번 철철~ ㅠ.ㅠ
앞구르기 하던 유재랑 부딪혀 피 한 번 철철~ ㅠ.ㅠ
결국 일주일 뒤 보정물을 설치하러 다시 병원에 갔다.



치료받는 그 50분간의 시간은
아이에겐 그야말로 고문 그 자체였다. ㅠ.ㅠ
찍찍이 포대기같은 이불에 내복바람으로 꽁꽁 묶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어금니엔 쇠붙이 두 개를 끼우고
마취주사를 맞고 맞고 또맞고... 
잇몸에 박힌 생니를 끌어내고
두 개의 앞니 뒤에 구멍을 뚫어 신경과 혈관을 다 긁어내고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약 넣고 구멍 막고
철사 보정물 붙이고
갈고리같은 바늘로 잇몸을 관통해 세 바늘이나 꿰매고...ㅠ.ㅠ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난생 처음 치과 치료를 받아본 은후는 아기 때 잠깐 있었던
병원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이 한동안 되살아났다가
다시 회복중이다.
어제 저녁엔 밥을 먹다 문득 "엄마 난 치과가 정말 좋아요." 해서
왜냐고 물으니 이를 안아프게 치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이 계셔서 그렇다나?
정말 무섭지 않은걸까 일종의 자기 최면일까 교육의 효과일까. 여튼 녀석 참 속깊다.


나는 아직도 치과가 무섭다.
어렸을 땐 더했고.
치료도 받기 전부터 진료실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내 차례가 되면 엄살을 부리고 울어대는 통에 이런 애기 치료 못한다는 말 들으며 애기들 잘 구슬린다는 치과를 찾아다녀야 했던 엄마.
그 애기들 잘 구슬린다는 치과를 아직 난 기억한다.
입 크게 잘 벌린다고 칭찬 받으면 좋아서 얼굴 망가지도록 더 크게 벌렸던 애기...
의사선생님이 안고 창밖 구경도 시켜주시고, 움직이는 의자로 비행기도 태워주시고,
풍선도 주시고, 은근... 협박도 하시고.^^
애기들을 잘 구슬린다는 치과는 아픈 이보다 애기들의 두려운 마음을 더 잘 이해해주는 치과였다.

은후도 어린이 치과에서 그나마 수월하게 치료를 잘 받은 것 같다.
진료실 들어가기 전, 꼭 한 번씩 들어가서 긴장을 풀던 입속탐험방.
뽀로로가 흘러나오던 진료실 천장.
수십마리 기린이 그려진 가운을 입고 나타난 의사선생님도 참 친절하셨고.^^
비록 치료받을 때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치료받으러 가는걸 마다하지는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진기를 들고 이~~~해봐 하니 이렇게 입술을 훌렁 들어올려 주었다.
그냥 이~~~하면 꼬불꼬불 철사가 잘 안보이는데... 엄마의 의도를 파악했다. 녀석.
(앞니는 원래 좀 벌어졌다.^^)



암튼, 큰 사고
최선책으로 꼬불꼬불 철사를 달아놓았지만
예후는 그다지 좋지 않다.
다음달에 철사 떼고, 조심조심 지내다가
언젠간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조금 일찍 빠지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으니. 위안을 삼는다.
튼튼하고 건강하고 예쁜 영구치를 주세요.^^

우리 은후, 다쳐서 놀래고 아프고, 치료받느라 고생하고...
그래도 이제 작은 이 하나라도 아프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우리 몸 작은 한 부분도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은후에게 큰 깨달음이 되었길 바란다.
엄마는 볼 때마다 속이 상하지만... 우리 은후는 큰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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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