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스스로

2013. 10. 6. 22:36 from white


서너살 무렵. 한창 뭐든 자기 스스로 해보려는 고집스런 시절이 있었다면
일곱살 은후는 이제 집이 아닌 집 밖 넓은 세상 속에서 '스스로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다.
은후는 지금 세상을 향해 똑똑 문을 두드리며 알게 모르게 세상 속으로 섞여들어가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5월의 첫 날.
엄마아빠가 베란다 창문에 붙어 멀리서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씩씩하게 피아노학원에 혼자 가던 날.
아파트 단지내에서 찻길 한번 건너고,
창문에서도 학원 입구가 보이니 그다지 멀지도 않지만 아이에겐 가깝지만도 않은 그 길을 혼자 보내며 엄마는 말없이 묵묵히 그 긴장된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은후아버님 옆에서 동네 쩌렁하게 "은후야~~~" 걸음 멈추고 두리번거리게 만들고... 또 몇걸음 가고 있으면 "은후야~~~" 200미터 정도 되는 그 거리를 가는 동안 몇번을 불러 뒤돌아보게 만들었는지.
아무래도 우리집은 엄마아빠가 바뀌.........








지난 여름방학엔 선생님께 보낼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스스로 돈을 내고 우표를 사봤다. 비록 소심모드였지만 처음으로 직접 돈을 내고 우표를 사보면서부터 뭔가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며칠 뒤 피아노학원 가기 전 현관에서 신발을 신으며
"엄마, 용돈좀 주세요." 하길래 왜? 물으니

"요구르트좀 사먹게요."

요하임같은 빨아먹는 요거트같은거 하나 입에 물고 올 줄 알고
이천원이면 되겠지 하고 이천원 손에 쥐어줬더니
학원 끝나고 헐레벌떡 묵직한 까만 비닐봉지 한보따리를 들고 뛰어들어온다.
뭔가 보니 요쿠르트 열다섯개. 엄마랑 동생한테 의기양양 나눠주던 그 모습. ^^







이젠 우유가 떨어지면 우유도 사오고.
소풍가는 날 챙겨갈 간식도 쪼르르 가게 달려가 제 취향대로 사온다.







팥빙수에 굳이 젤리를 얹어 먹겠다고 냉큼 가게 달려가 왕꿈틀이도 사오고.
암튼 그놈의 왕꿈틀이는............ 엄마도 참 맛있긴 해. ㅋㅋ







이렇게 유재 손잡고 다람쥐 두마리처럼 굴러갔다 오기도 한다. ^^
그래도 밖에서 둘만일 땐 참 의좋은 형제다. 꼭 잡은 두 손. 내려다보면 뿌듯~
비록 다시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의좋은 형제는 사라지지만... ㅋㅋ







우리아파트에 월요일마다 오는 순대 차. 맛이 좋아 가끔 사먹는데
이날은 은후가 사오겠다고 해서 심부름을 보냈다.
"순대 1인분 주세요~" 그것만 시키면 재미없으니 거기에 추가로 엄마가 내린 미션 하나.
"간 많이 주세요~" ㅋㅋ







미션까지완수. 푸짐한 간~



이젠 유치원 등하원도 혼자서.
하원 버스 내려 혼자 오는 건 괜찮지만 그래도 아침엔 버스태워 보내며 손 흔들어주고 다정히 배웅해주고 싶어서 꼭꼭 같이 가곤 했었는데... 녀석이 굳이 혼자 가고 싶어하니 아침에도 혼자 보내게 되었다. 한 한달쯤은 혼자 잘 가다가... 어느 날부터 다시 데려다 달라고 하는데 이젠 내가 귀찮아서 그냥 계속 꿋꿋이 혼자 보내고 있다. 참 간사한 엄마같으니라고. ㅎㅎ

암튼 일곱살이지만 많이 애기같아 보이는 우리은후, 혼자 유치원 다니는 것 보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들이 "씩씩하구나~", "멋지구나~"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모양인데 그럴 때마다 은후는 뭐라고 말해? 물으니 그냥 빙그레~~~ 웃는단다. ^^




엄마는 어린 시절 언니와 나를 참 강하게 키우셨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를 강하게 키우셨다기보다 엄마의 육아방식이 참 대범했다고 할 수도.

딸 둘을 키우신 우리 엄마.

아둘 둘을 낳고 키우다보니 가끔 딸 둘 키우신 엄마 말씀이 참 와닿지 않을 때도 있다.
이를테면... 아이들도 다 알아들으니 그렇게 소리지르지 말고 좋은말로 잘 설명하고 잘 이해시키며 키우라는... 뭐 그런 골자의 말씀들.
내가 가끔씩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두녀석 잡으면 과격한 아이들일수록 부드럽게 키워야 한다고 걱정을 하신다.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ㅠ.ㅠ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깡패엄마는 아니었다고요...ㅠ.ㅠ

나는 방학때면 종종 언니와 둘이 기차를 타고 친할머니댁에 가곤 했다.
지금의 익산. 그때의 이리. 3시간이 넘는 거리.
엄마가 우리를 기차에 태워 보내시면 종착역에선 할머니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로 기억한다.

빼빼 마른 여자아이 둘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두자리에 나란히 앉아 가고 있으면
늘 엉덩이가 큰 아주머니들이 우리 팔걸이에 걸터앉아 우리영역을 슬금슬금 침범하다 우리가 둘만 여행중이란 사실을 알게되면 우리둘을 한자리로 밀고 나머지 한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가곤 했다. 아무리 빼빼마른 아이들였어도 둘이서 한자리는 참.. 불편한 여행이었다. 그래도 비켜달란 말도 못하고 우리는 그냥 불편한 채로 앉아가곤 했다. ㅎㅎ

그 땐 세상이 지금보다 덜 험하기도 했거니와.. 얌전한 여자아이 둘이었으니 엄마도 우리를 믿고 보내셨겠지. 지금 나였다면 두녀석 기차 안 민폐끼칠 걱정부터 앞섰을텐데..ㅋㅋ

난 일곱살때부터 혼자 머리를 감기 시작했는데 그러고보니 지금 은후 나이다.
뭐 4월생이니 생일이 빠르기도 했지만 암튼 유치원 친구들에게 무심코 혼자 머리감는다는 얘기를 했을 때 모두들 깜짝 놀라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엄마는 일곱살 아이 혼자 머리를 감았을 때 목덜미에 남아있을 거품따위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요즘 은후도 가끔 혼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다고.. 그냥 머리에 물을 끼얹고 끝나기도 하는데.. 마음은 다시 제대로 씻겨주고 싶지만 먼옛날 나의 엄마처럼.. 스스로 어린이를 칭찬해준다. 스스로 어린이의 일상은 하나하나가 다 칭찬해 줄 일이고 축하해 줄 일이다.

어릴 때부터 참 독립적으로 자라서인지 난 아직도 남에게 작은거라도 뭘 부탁하는 게 참 어렵다.
그치만 세상 살다보니 적당히 부탁도 해가며 지내는 게 사람사이를 더 가깝게 만든다는 것도 알겠다.


이제 혼자서 자전거도 타다 오고.. 처음엔 불안불안하던 나의 걱정도 갈수록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나도 이녀석을 믿고.. 스스로 어린이가 이렇게 조금씩 나로부터 세상 속으로 독립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오늘은 처음으로 유재가 형아손잡고 유치부 예배를 드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형아가 동생을 너무나 사랑하는 것 같단다. 계속 챙겨주고 쓰다듬어주고 하는 모습을.. 나도 멀리서 엿보았다. 엄마가 없어도 집 밖에서 둘이 그렇게 다정히 챙겨주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두녀석 참 많이 컸구나.. 싶다..


오늘 목사님 설교말씀 중에.. 강한 사람은 힘들 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힘은 어린시절 따뜻하게 안아주셨던 엄마의 품 속에서부터 나온다고...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나 나에게나 지금이 참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끝없이 참으며 응원해주며... 험한 세상 속에서 강하고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한번더 따뜻하게 꼭 안아주고 사랑어린 말들을 듬뿍 해주는 것...
그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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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