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2009. 5. 9. 23:01 from white






요즘 날짜감각이 워낙 없다보니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한달은 훨씬 더 지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은후가 잠에서 깨어나면 침실 창가쪽을 보며 손을 뻗고
뭐라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이.

손끝이 가리키는 곳은 창가의 검은 커튼봉 오른쪽 끝자락이다.
하얀벽에 검은색 커튼봉이라 명암대비가 확실해 어느순간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나보다 싶었는데...
가끔씩 한밤중에 자다깨서도 뭔가 중얼중얼 말하는소리가 나서 가보면
깜깜한 방에서도 그곳을 향해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마치 누군가와
얘기를 하듯 중얼중얼 하고 있다.
근데 그 모습을 하루...이틀...일주일...한달... 반복해서 보고 있으면...
몹시 섬뜩하단 생각이 든다. ㅡㅡ;;
우리집에 캐스퍼같은 꼬마유령이라도 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것이.

며칠 전 커튼을 모두 떼어내 창가가 휑해졌다.
커튼은 일주일이 넘도록 잠수중.
빨리 빨아서 다시 달아야는데 당최 빨 시간이 나야 말이다. ㅡ.ㅡ
암튼 며칠을 휑한채로 지내다... 은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지점에
바지와 양말을 널었다.
바지와 양말이랑 이야기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좀 덜 섬뜩할테니까.
근데 바지와 양말을 널어둔 뒤로 은후의 중얼거림이 사라지고 있다.
진작 바지를 널어둘걸. 싶은 한편
엄마가 유령친구를 쫓아 은후가 심심해진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
이럴 땐 정말 은후의 속마음을 묻고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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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세 달이 지난 요즘.
창밖으로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자동차와 기차를 발견하게 된 후로
이제 꼬마유령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가보다.
허공을 향한 은후의 중얼거림은 사라졌고
이젠 오로지 "부우부우~ 폭폭~ 폭폭"
은후의 마음 속에 보이는 건 저멀리 창밖넘어 기차와 자동차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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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살구 :